가천대학교 구성원들간의 소통을 증진시키기 위해 기획된 바람의 초단박 깨알 공감, 발언, 소통 프로젝트, 가천의 소리!
발언자가 직접 발언할 장소를 선정하지만 발언주제는 바로 '여러분 자신' 입니다.
가천의 소리 속 [가천인 이야기].
가천대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의 고민, 어려움, 장애물, 성취, 기쁨, 기대, 그리고 지금의 '나' 를 만든 소중한 것을 나눕니다.
가천대학교 구성원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누구든지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천인 이야기 # 13
책임감, 성실성과 열의, 그리고 가천방송국.
오수민 ( 불어불문 3 ) , 문성경 ( 관광경영 3 )
매번 이런 말 하기도 뭐하지만
매서운 바람에 눈 뜨기도 어렵도록
한파가 정점을 찍은 겨울밤,
모처럼 조용했던 학교 옆의 까페에서
오늘의 주인공'들'을 만났습니다.
이달 말 가천방송국 실무진 퇴임을 앞두고
내년의 가천방송국을 이끌어 갈 새 리더를 고민하고 있는
두 주인공에게선 지난 몇 년의 교내 방송국 생활로 얻은
노련함과 세련됨이 돋보였습니다.
좌 : 29기 총무 & 아나운서 부장 문성경 (이하 문) / 우 : 29기 방송실무국장 & PD부 부장 오수민 (이하 오)
가천방송국에 신입으로 들어올 당시 선발과정은 어려웠나요?
문 : 3월 초에 하는 국원선발과정에서는 경쟁률이 높은 편이죠.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가천방송국에 대해 들으면 '방송국', 학교 언론이라고 다들 인식을 하고 있기도 하고, 가장 먼저 신입생이 찾아오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선발과정은 어려운 편이에요. 저희 때는 신입국원 10명을 뽑는데 20명에서 30명정도 지원했었죠.
지금까지 방송국에서 활동하면서 제일 힘든 일은 무엇이었나요?
오 : 3년 동안 하면서 힘든 일이 너무 많아서 꼽기가 어려운데(웃음) 일단 아침, 저녁으로 '방송 모니터'를 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이 아니었나.... 왠만해선 빠져서는 안되는 자리가 '방송 모니터'였고, 또 매주 한번은 꼭 정규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 등 방송국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점이 조금 힘들었던 거 같아요.
문 : 이 부분도 저희가 처음에 신입국원을 뽑을 때, 이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방송국에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고 최우선순위를 둬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신입국원을 선발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방송국에 들어온 학우들은 힘들어 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학우들도 생기고요. 반면에 그걸 감안하고 감내해서 지금까지 지내온 친구들도 있고요.
3학년 실무진으로 퇴임하는 사람은 두명, 둘이서 구성원들을 인솔하는데 힘들지 않았나요?
오 : 아무래도 실무진이 저희 두명이다 보니까 국원들을 인솔하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가천방송국 구성원이 적은 인원은 아니니까요. 저희 단체 구조상 활동 중에 군대를 가거나 하면 다시 방송국에 복귀를 할 수 없는 구조라서 대부분 선배들이 여자들이에요. 그래서 남자후배가 들어오면 처음에 포용하거나 끌어들이기 힘든 면도 있고요.
주로 여자선배들이 많으면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울 것 같은데?
문 : 저희가 1학년, 2학년, 그리고 지금까지 분위기가 매번 달랐어요. 방송국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어떤 분위기로 주도하느냐에 따라 다른 거같아요. 저희가 1,2학년때는 경직된 분위기였어요. 진짜 방송국처럼. 여자선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오 : 지금 분위기는 부드러운 편이에요. 선후배가 같이 있을 때 서로 친하기도 많이 친하고요.
문 : 그래도 방송국의 위계가 아예 없어질순 없는게 일을 하다보면 항상 일을 전달하고 해내고 하는 기본적인 체계는 바뀌지 않으니까요.
위로 선배층이 두터운데, 선배님과의 교류는 많이 있는 편인가요?
오 : 선배님들과 저희가 동문회같은 큰 행사에서 교류하는 것도 있지만, 그냥 작게는 가까운 동네의 선배님들이 부르시면 저희가 가서 선배님들과 술자리도 하고 그러면서 식사도 하면서 자주 교류를 해요. 그리고 가끔 학교에 들러주시는 선배님들은 방송국에도 꼭 들러주셔서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그래서 교류가 잦은 편이에요.
실무진으로 1년을 보내는 동안 어려움은 어떻게 헤쳐나갔나요?
문 : 확실한 거는 그 모든 상황을 저희 둘이서 헤쳐나간 건 아니에요. 방송국원들과 다 같이 했죠. 이 친구(오수민 국장)가 국장이지만 피디로서 후배 PD 친구들에게 방학 때 교육을 길게 하는데, 그렇게 가르쳐 준 후배들이 자리에 없으면 바로 결원이 생기는게 아니라 다른 국원들이 그 자리를 채워져서 방송을 만들어가기 때문에 그래서 방송국이 잘 굴러간거 같아요.
오 : 힘든 일이 있을 때는 다같이 헤쳐나간거죠.
문 : 하는 일에 비해 생각보다 인원이 적어서 그렇게 함께하지 않으면 일을 해나가기 힘들어요.
매일 아침,저녁으로 방송을 진행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오 : 방송이 펑크가 난 적은 일년에 한 두번. 그런데 방송 자체가 나가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어요. 저희는 항상 정규방송 스탭이 PD, 기술, 아나운서, 3명으로 꾸려지는데 항상 모니터 요원들이 대기하고 있어요. 만약에 스탭 중에 한 명이라도 펑크가 나면 모니터요원으로 바로 대체해서 그 날 방송을 맡을 수 있도록 해서 최대한 방송 자체가 펑크가 나는 일은 없도록 방송국 시스템이 되어있어요. 아예 결방되는 경우는 없지만 간혹 방송멘트를 못하고 음악만 연달아 나가는 경우가 일년에 한두 번정도 밖에 안되요.
프로들도 힘든 일인데, 일하다보면 자칫 해이해질 수 있었을텐데?
오 : 저희는 딱히 성실해야만 한다는 이유를 안찾았어요. 어떤 느낌이었냐면,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니까.' 그냥 이런 느낌?
문 :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책임감. 그거 하나는 다들 확실한 거 같아요. 방송 스케쥴링을 다 해놓으면 '이 날은 이걸 하고 그 다음날은 뭐다', 이렇게 스케줄을 짤 때는 같이 하지만 그 다음에 자기 맡은 일을 하고 언제까지 결과물을 내놓는 건 각자 자기시간 쪼개서 하고요. 결과를 내놓는다만 확실한 것이지 각자가 다 알아서 하거든요. 그렇다고 개인플레이가 아니에요. 방송이 절대 혼자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다 같이 해야 하니까 다 같이 시간을 맞춰야 하고, 그정도에요.
오 : 그리고 개개인의 열정도 있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가천방송국이 방송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다 보니까 자기 방송이라는 마음으로 자기가 열심히 멘트를 쓰고 아나운싱을 연습하고 음향기계를 조절하는데 열의를 느끼니까 거기서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거죠.
방송국의 코너구성의 시스템은?
오 : 아침방송같은 경우는 월~금요일까지 요일별로 음악 장르를 다르게 해서 방송을 해요. 한마디로 음악방송이죠. 음악이 위주가 된 방송인데, 예를 들어 월요일은 pop, 화요일은 주간인기차트 이런 식으로 장르를 달리해서 방송을 하고요. 저녁방송같은 경우는 저희는 사색이라고 부르는데 각 피디마다 조금 더 특색있는 방송을 맡아서 아침의 음악방송보다는 음악을 더 줄이고 멘트위주로 방송을 진행하고 있어요. 저녁방송같은 경우는 교양적인 부분, 예를 들어 문화나 영화, 영어방송을 해요. 영어방송같은 경우는 학기마다 꼭 들어가도록 하고요. 나머지 부분은 학기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그런 구성으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30기 차기국장은 정해졌나요?
문 : 차기 국장이 될 사람을 고려하는 기준은, 일을 같이 하다보면 그 친구의 장단점이 보이잖아요. 그 친구가 일만 잘해서 국장으로 세우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아우르는 것만 잘해서 국장으로 세우는 것도 아니고, '그 요소들을 보완해서 잘하는 능력이 어떻게 되느냐' 그런 걸 보면서 국장을 세우고요. 또 국장 만이 문제가 아니라 국장의 주변에서 서포트도 같이 하면서 일을 해야하는 거잖아요. 이 후배가 국장이 되면 다른 친구들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는지 고려하고요. 저희가 생각을 해두지만 동기나 후배의 입장도 다를 수 있으니까 다 개별면담을 다 해서 구성원의 의견을 들어서 결정을 해야죠.
오 : 그렇게 해야 탈이 없을 거 같더라고요.
GBS로 활동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과 아쉬움을 느낄 때.
오 : 활동하면서 아쉬웟던 적은 제가 한 번 방송에 늦은 적이 있었어요. 그 때 눈을 떴는데 방송시간이 오바된 걸 보자마자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왜 사는거지?' 그런 느낌이 들었을 때가 제 3년 방송생활 중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이죠. 방송일에 있어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실수를 했던 때가 가장 아쉬웠던 순간이었고,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은 아무래도 이번에 방송제를 마무리했을 때. 제가 <작품1>을 맡았는데 작품 편집을 완료하고 상영해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짠하더라고요. 그 때가 제일 보람있었던거 같아요.
문 : 저 같은 경우는 아쉬웠던 적은, 처음에 신입으로 들어왔을 땐 동기들이 되게 많아서 다같이 스타트를 끊었는데 동기들이 하나둘 씩 지쳐서 방송국을 떠나갈 때. 그리고 정말 끝까지 남아서 함께 일할 것 같은 동기들이 나갈 때. 그 때가 정말 아쉬웠어요. 그리고 보람있었던 건, 이 친구(오수민 국장)는 일적인거 같은데 저는 사람과의 관계적인 거에요. 되게 부족한 모습이 굉장히 많았던 후배들이 어느 순간 봤을 때 자기 일을 잘 해내고 있는 그 때. 일이 서툴러서 챙겨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안정된 모습을 보여줬을 때. 그리고 반면에 들키는 느낌도 있어요. 제가 후배였던 당시의 선배로서의 역할을 내가 했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내가 여전히 부족한 점을 느끼는 걸 이 친구들이 아는 느낌. 예를 들면 제가 2학년이고 후배들이 1학년일 때, '내가 봤을 때 너희는 이런거 같다'고 조언을 해줬지만 막상 이 친구들이 2학년이 되어서 그 당시의 제가 부족하다는 걸 느끼는 게 창피한 느낌.
퇴임 전 마지막 행사였던 29회 방송제까지 모두 마쳤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오 : 일단은 제가 원래는 눈물이 진짜 없는 편인데 엄청 울었어요. 그 때 이런 느낌이었어요. '다 쏟아 부어야지' 해서 그런 마음으로 임했지만 마지막엔 아쉬움이 많이 남아서. 쏟아부은 것도 힘들잖아요. 그 힘든 데서 오는 눈물과 동시에 아쉬워서 난 눈물도 있었고. 뭐라 말로 표현을 못하겠는데 시원섭섭했던 기분이었죠.
문 : 이 친구는 진짜 잘 안우는 친구인데, 제가 원래 눈물은 많은데 제가 그날 울지 않았고요.
방송제가 끝나고 후배들이 수고했다고 표현을 하던가요?
오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이런게 있어요. 저희가 이번에 다같이 후배들과 작업을 했으니까.
문 : 원래 기존에는 방송제라는 자체가 퇴임과 맞물려서 3학년 실무진만 하는건데 이 친구가 아이디어가 좋아서 아예 후배들과 팀을 꾸려서 작품을 만들었거든요.
오 : 실질적으로 방송제 자체도 헤드가 되어서 했지만 그 전에 저희가 촬영하고 작업했던 작품들도 저희가 감독으로서 진행했던 거라서 더 두배로 더 와닿은 거 같아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또 올 것 같긴한데 이 나이에 순수함과 더불어서, 저희는 재밌게 놀면서 촬영도 하고 그랬거든요, 조금 힘들고 짜증나더라도 금방 놀면서 풀어지고 그랬는데, 이 나이에만 이렇게 할 수 있는거 같아요. 이런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때 만큼 즐겁고 순수하게 하지는 못할 거 같아요.
문 : 환경조건도 바뀔 거 같아요. 저희가 차를 운전할 수 있는 친구가 없어요. 그래서 차도 없고 운전할 수 있는 사람도 없어서 이 친구 작품팀에 제가 출연해서 같이 다녔는데 장비들을 다 들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했어요.
오 : 그 날이 마침 태풍 오는 날이었어요. 포뱅크 조명을 빌렸는데 그 엄청 무거운 장비를 들고 그냥 걸었어요. 비바람을 맞으면서. 이런 상황이 앞으로는 못 겪을 거 같아요. 제게 있어서 최고의 기억이에요.
GBS를 통해 내가 키운 비전이 있다면?
문 : 일을 뭔가 3년 동안 꾸준히 해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인데, 그걸 꾸준히 해봤다는 거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 거 같고요, 그 전에는 참 내가 잘 하는 게 많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일을 하면서 내가 못하는 걸 하나씩 찾은 느낌이에요. 그래서 '내가 이런걸 못하고, 이런걸 못하고, 이런걸 못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걸 알고, 앞으로 그런 걸 내가 못한다는 걸 인정하고 들어가서 그 전보다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요. 크지는 않은데도 어려운 그런 기대죠. 3년 동안 했던 걸 바탕으로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오 : 저는 일단 꿈적인 부분으로 말하자면, 제가 고등학교 때 영화감독이 꿈이었어요. 방송국에 들어온 것도 그런 것도 생각을 하고 방송국에 들어간게 있는거 같은데, 그냥 그냥 지내다 보니까, 또 제가 불문과다 보니까 의미가 퇴색되고 그게 별 것 아닌 일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다시 그런 작업을,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해보면서 다시 한번 열정이 생긴 거 같아요. 일단은 계속 영화 공부를 더 해서 나중에 내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비전이 하나 생겼어요. 그리고 다른 부분에서 말하면, 비전이라기엔 의미가 다를 수 있지만, 저희가 선배가 되잖아요. 아예 동문이 되는건데, 그냥 사람들이 찾아주는 선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일적으로 저희에게 도움을 받고 싶든, 아니면 인간적으로 저희에게 기대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제 바람이에요.
'가천의 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천대 바람] 2013 설문조사(1) "가천대 학생들의 통학시간은?" (2) | 2013.03.04 |
---|---|
[가천대 바람] 가천인 이야기 _ 두렵기 때문에 도전하는 이성민 (5) | 2012.12.18 |
[가천대 바람] 가천인 이야기_ 정의할 수 없는 남자, 문기강 (0) | 2012.12.04 |
[가천대 바람] 가천인 이야기_ 4년차 베테랑 유학생 유소염 (1) | 2012.11.27 |
[가천대 바람] 설문조사 8 <총학생회 TocTalk 특집> (3) | 2012.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