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를 혼자 보러가지 않는다.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이 여유롭고 즐겁다는 사람들도 많고, 이제는 혼자 영화를 보러온 사람들만을 노린 이벤트도 있을 만큼 혼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음에도 나에게 혼자 극장에 가는 것은 일탈이라고 할 만큼 극장에 혼자 가본 적이 드물다. 사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갈 무렵, 매표소에서 한 장이오!를 외치면 한 장이오? 라고 되묻는 사람이 줄어들기 시작하던 그 때, 나도 그 한 장이오!가 외쳐보고 싶다고 했었다. 그 때 작은고모가 하는 말이 극장에는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고, 위험하기도 하거니와(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생각해보면 몇 년 전만 해도 영화관은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그 날 같이 간 사람이 누군지에 따라 얼마나 영화가 달라지는데 그 추억을 버리냐는 것이었다. 들었을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얼마 뒤에 고모가 쓴 글을 봤을 때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이해했다. 그 때 고모가 올리는 섹션의 제목은 '극장 구경'이었다. 지금은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성행하다보니, 극장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지만, 내가 처음 영화를 보러갔던 곳은 분명 극장이었다. 고모는 그 글에서 어렸을 때 극장구경을 가면 그 영화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던 길까지 생각난다고 했다. 그래서 극장은 간다가 아닌 구경 간다. 라는 수식어가 쓰이는 것이라고 했다.
써니는 개인적으로 그런 영화였다.
극장에 가서 보는 영화는 단순히 그 영화만이 아니라, 주변에 들려오는 소음이나, 뒤에서 느껴지는 분주한 움직임, 그리고 옆에 앉아있는 사람과의 교감까
이상적이다 못해 다소 피곤하게 사는 주부 나미가 있다.
남편이 좀 뒤척이면 어떻다고 알람이 울린 지 삼초도 안 되서 알람을 끄고, 조심히, 살금살금 침대에서 일어난다. 딸을 깨울 때는 여느 엄마들처럼 일어나라고 소리치는 게 아니라, 물 한잔을 떠서 놓아주고는 짜증 가득한 딸에게 끝까지 웃어준다. 한 마디로 교양이 흘러넘치는 엄마다. 온갖 짜증과 무관심 가득한 전쟁 같은 아침을 끝내고 이 아줌마는 창가에 앉아 딸이 남긴 빵조각을 먹는다. 아침나절 내내 그렇게 교양을 차리더니, 혼자 있을 땐 결국 그렇게 다 식어빠진 빵으로 아침을 때운다. 더 비극적인 것은 그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해보였다는 거다. 엄마와 싸우고 나와 이 영화를 봤다는 한 친구가 이 장면을 보고 엉엉대고 울었다고 할 만큼 나미의 삶은 대놓고 '아, 어머니!'를 외치게 한다. 한마디로 뻔하다.
이러한 나미의 삶 가운데 한 노래가 울려 퍼진다.
Sunny yesterday my life was filled with rain Sunny you smiled at me and……. 청소기를 돌리는 나미의 위로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나온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딸도 관심 없고, 남편도 백이라도 사라며 돈 봉투나 건네주는 친정엄마의 병실로 가는 날. 청소부터 해놓고 가는 나미의 위로 쏟아진 이 노래는 뻔한 이 영화의 암시 같은 것이다. 이 영화는 정말 처음부터 뻔했다.
친정엄마가 입원한 병실에서 본 한 연속극처럼……. 이 영화는 참 뻔하다.
- 남매는 아니겠지……. 사실 너흰 남매다!
- 설마 불치병은 아니것지……. 나.. 암이래
- 설마 죽는 건 아니겠지.. 나 몇 개월밖에 못산대…….
예측이 백퍼센트 가능한 막장코드로 둘러싸인 연속극처럼 이 영화는 처음부터 '결국엔 뻔한 이야기로 마무리 지을 거야.'라는 느낌을 다분히 가지고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너무 예측이 가능해서 답답하기까지 하던 나미의 인생에 Boney M의 SUNNY라는 노래처럼 특별한 일이 벌어질 거란 의미로 다가오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미의 뻔한 삶은 암에 걸린 고등학교 친구 춘화를 만나는 뻔한 사건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전라도 벌교 전학생 나미는 긴장하면 터져 나오는 사투리 탓에 전학 첫날부터 날라리들의 놀림감이 된다. 이때 범상치 않는 포스의 친구들이 어리 버리한 그녀를 도와주는데 그들은 진덕여고 의리짱 춘화, 쌍꺼풀에 목숨 건 못난이 장미, 욕 배틀 대표주자 진희, 괴력의 다구발 문학소녀 금옥,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사차원 복희, 그리고 도도한 얼음공주 수지이다. 나미는 이들의 새 멤버가 되어 일곱 명의 단짝 친구들은 언제까지나 함께 하자는 맹세로 칠공주 ‘써니’를 결성하고 학교축제 때 선보일 공연을 야심차게 준비하지만 축제 당일, 뜻밖의 사고로 뿔뿔이 헤어지게 된다.
그로부터 25년 후, 잘 나가는 남편과 예쁜 딸을 두었지만 무언가 2프로 부족한 나미의 삶에 ‘써니짱’ 춘화와 마주치는 뻔한 사건으로 ‘써니’ 멤버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그리고 모든 영화가 그렇듯, 친구를 찾으면서 나미는 완벽한 삶속에 부족하던 2프로를 찾게 된다. ‘이 나이에 무슨... 그냥 사는거지’ 가 아니라 그 찬란했던, 굴러가는 낙엽에도 까르르 웃어대던 시절 인생의 주인이 나였고,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가듯,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돌아보게 된다. 꿈, 취미, 첫사랑까지.......
그리고 나미를 비롯한 모든 친구들 역시 찌들어있던 자신의 삶에서 당당하던 고등학교 때 그 모습으로 돌아와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그리고 뻔하게도 그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장소는 바로 춘화의 장례식장. 하지만 그들은 그 슬픈 친구의 죽음 앞에서 까르르 웃어댄다. 그리고 친구의 죽음 앞에서 맺지 못했던 공연을 시작한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뻔한 소재가 가장 만들어내기 어렵다.
이 영화는 정말 뻔하다. 글에서 계속 강조했듯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보며 어린 시절의, 혹은 자신을 찾은 나미처럼 한시간 반동안 실컷 웃고 나올 때 가져가는 감정이 뻔하지 만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어머니가 떠오르고, 당신의 삶이 떠오르는데 까지는 같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뻔한 주제는 매번 신선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 영화는 혼자도 좋지만
, 당신의 인생에 중요한 누군가와 함께 보기를 권한다. 써니 멤버들처럼 친한 친구도 좋고, 그 시대를 살았을 이 시대에 어머니도 좋고, 앞으로 당신의 인생을 함께할 그 어떤 이도 좋다. 이 영화에 더해 옆에 앉은 그 사람과 나누는 교감에서의 행복과, 또 그 교감을 나누기 위해 오롯이 서있는 나를 느끼면서 본다면 당신은 분명 무언가 얻어갈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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