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학교 구성원들간의 소통을 증진시키기 위해 기획된 바람의 초단박 깨알 공감, 발언, 소통 프로젝트, 가천의 소리!
발언자가 직접 발언할 장소를 선정하지만 발언주제는 바로 '여러분 자신' 입니다.
가천의 소리 속 [가천인 이야기].
가천대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의 고민, 어려움, 장애물, 성취, 기쁨, 기대, 그리고 지금의 '나' 를 만든 소중한 것을 나눕니다.
가천대학교 구성원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누구든지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천인 이야기 # 15
생각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면 이뤄지리라
김보경 ( 언론영상광고 4 )
어느정도 봄 날씨를 만끽하게 해주는 5월의 첫째 주.
여러분, 잘 지내셨나요?
잠시 쉬었던 코너, 가천인 이야기가 돌아왔습니다.
대학생활하면 여행, 동아리, 대외활동 등을 꿈꾸곤 하는데요,
관심만 갖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운 계획과 실천을 통해
두려움도 떨치고 자신의 진로도 결정한
혼자 여행다니는 것을 겁내지 않는,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것을 좋아하는,
무엇보다도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4학년임에도 학과 부조교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김보경 학우와의 솔직한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 학우에 대한 소개없이 바로 인터뷰 내용이 시작됩니다 *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스마트폰없이 내일로를 다녀오다
스마트폰이 없을 시절에 내일로 티켓이 나왔었어요. 이 얘기를 지인분한테 듣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으로 알아보기 시작했죠.
그 후 간단히 짐을 싸고 일정을 정한 다음에 여행을 떠나게 되었어요. 지금은 이동중에 스마트폰을 통해서 주변에 명소가 뭐가 있고 알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기에 다이어리에 기차시간표며 일정을 빽뺵히 적어놓고 그 시간에 맞춰서 이동하고 그랬었어요.
힘들기도 했지만 이 때 돌아다니면서 혼자다니는 것에 대한 용기 얻은게 사실이죠.
그리고 혼자다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더라구요. 다들 혼자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 말도 걸고 사진도 찍어주고 그랬어요.
일정이 겹치는 사람들끼리는 같이 다니기도 하구요. 여행지에서 만났던 분 중 기억에 남는 분은 순천 드라마세트장에서 뵜던 분인데요.
"자기가 내성적이고 겁많은 사람인데 없애기 위해서 혼자 다니는거다"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어요. 이를 들으면서 여러계기로 사람들이 오는구나 싶더라구요.
이렇게 다니다 보니 혼자 다니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어서 그런지 잘 다니게 되었어요. 더불어 친구랑 같이 여행을 다니게 되면 얘기도 하고 옆에 있어서 다른 생각이 잘 안나는데 혼자 다니게 되면 여행간 지역의 문화재가 담겨있는 엽서같은거 사서 부치면 엄청 감동받더라구요. 그래서 기차타고 이동중에 엽서 작성해서 보내주고 했어요, 받는사람도 뜻깊게 받고 저도 되게 뿌듯했어요.
그래봤자 지구안
원래는 혼자다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중학교 때 한비아 씨 책을 읽으면서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어요.
'나도 언젠가는 꼭 혼자 여행을 해봐야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계획을 세워 20살 때부터 국내외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거나 차가 끊겨도 "그래봤자 대한민국이야", "그래봤자 지구안이야" 혼자 되내이면서 겁내지 않고 다녔죠.
몽골에 가다
21살에 휴학을 하고 일을 하던 중 몽골 사람들과 친해질 계기가 있었어요. 그들이 지나가는 말로 "몽골에 놀러와'라는 말을 했고 한 달 후에 저는 진짜 티켓팅을 해버렸죠^^.
그런데 문제는 제가 산 티켓이 유령항공권이었던거예요. 몽골항공측과 인천공항 간의 소통이 부족했던거죠. 가기로 한 날은 물론이고 3일을 공항에서 지내며 어떻게든 가려고 발버둥을 쳤어요. 3일째에 겨우겨우 대기번호 2번으로 갈 수 있었는데 비행기를 타러 들어가는 중에도 혹시나 뭐가 잘못됐다고 할까봐 막 뛰어갔던게 떠올라요.
천신만고끝에 도착한 몽골은 정말 하늘이 맑은 나라였어요. 중국의 영향이 클 줄 알았는데, 중국보다는 러시아의 영향이 더 큰 나라더라고요. 한국사람들이 대부분 오해하는게 몽골사람들이 한자를 잘 알거라고 생각하는데, 몽골사람들 한자 하나도 몰라요. 저도 처음에 한자를 써가면서 말을 걸었었는데 나중에 알게돼서 머쓱했었어요.
7월 중순에는 세계 10대축제 중에 하나인 몽골 나담축제가 열리는데, 운좋게 볼 수 있었는데 몽골 백화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한 달에 20만원 정도를 받는데, 티켓 값만 7만원가량이었어요. 미리미리 예약을 안한게 화근이었죠. 언어가 안되니까.. 칭기즈칸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몽골사람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체감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사실 아무도 제가 외국인인줄 몰랐다는...흑..)
그리고 몽골은 치안이 우리나라에 비해 좋지 않다고들 하는데, 사람들은 사실 정이 많은 것 같아요. 만났던 사람들이 말투나 표정은 사나워도 계속 챙겨주고 신경써줬던게 인상깊었어요. 여행기간 동안에 고비사막, 테를지 등을 한 달동안 돌아다녔고, 몽골 초원에서 사람들에게 아리랑을 알려주고 함께 아리랑을 불렀던게 기억에 남아요. 아마 평생 잊지 못할거예요. '몽골'이라는 나라 자체에 정이 들어버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청승맞게 울기도 했으니까요.
혼자 여행한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많던 저(담당자)는 김보경 학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단하기도, 부럽기도 했습니다.
생각을 실천으로 행했다는 점이 가장 인상깊었는데요, 여행 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실천으로 행하는 그녀였습니다.
미리 경험하여 생각을 넓히다.
동아리 KUPRA
원래 광고일을 하고 싶어서 대학 지원할 때 관련 과만 지원했었고, 우리학교도 그래서 신문방송학과를 오게 되었어요. 광고를 꼭 하고 싶었기에 광고동아리를 알아보다가 4대 광고 동아리 중 한 곳과 Let's PR 이라는 PR 동아리가 있어서 지원했죠.
20살 때 시작해서 2년동안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요, 토요일마다 만나서 짜여진 커리큘럼에 맞춰 공부도 하고 팀별로 행사준비를 해요. 스터디의 경우는 신문의 모든 면을 다 읽고 매일 정리를 해서 제출하는 것이 주로 하는 일이였어요. 벌금을 물어야해서도 열심히 했지만 이 덕분에 공부도 많이 했었어요.
뿐만 아니라 PR인의 하루라던지하는 일상을 듣기도 하고, 전문가 분들의 강연도 듣고 기업이랑 연계해서 일도 했었어요. 당시에 충청북도에서 주최한 아이디어챌린저라는 공모전이 있었는데 '농수산물 브랜드화'라는 충청북도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획안을 제출해서 우수상도 수상 하고 그랬죠^^.
그리고 저는 홍보팀에 있었는데 제가 활동했던 시기에는 아직 저희동아리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라 스폰을 받는게 좀 어려웠어요. 홍보팀은 동아리에서 행사를 하면 기업에 전화나 메일로 동아리를 소개하고 스폰을 부탁하는 일을 했었는데 이 과정에서 실제 기업들과도 컨택을 할 수 있었고 공문작성하는 법 등 실무적인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저희 팀 뿐 아니라 기획팀은 미리 강연자를 섭외하고 1년 계획을 다세우고 학술팀은 커리큘럼 준비를 다하고... 동아리라고 하지만 정말 일이 체계적으로 이뤄진다는 느낌이 들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죠.
포인트를 잡자
아무래도 동아리나 대외활동을 지원할 때는 자기소개서랑 면접을 보죠. 저같은 경우엔 자기소개서 작성할 때 핵심 키워드를 잡고 그걸 바탕으로 저를 컨셉화했어요. 저의 경우 긍정, 스마일, 독립을 컨셉으로 잡아 주로 글을 적었어요. 하나의 스토리를 작성해서 자기소개란이 분리 되어있어도 내용은 끊어지지 않고 다음 문항으로 내용이 이어지게 말이죠.
그리고 면접은 음... 인상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인상이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편인데, 긴장이 되도 웃고 다른사람이 질문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무표정이나 멍때리고있는 사람보다 편안하게 미소짓고 있는게 더 보기 좋지 않나요? 웃으면 복이온다는 말처럼 웃는 것, 좋은 인상을 만드는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20살이라면 대부분 놀기 바쁘다하는데...
스스로 관심사와 관련된 동아리를 찾고 활동하였다는 것 자체가 그녀의 당찬 성격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더불어 봉사활동 시간 때문이 아닌 정말 그 일이 좋아서한 활동도 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다.
에너지 시민연대활동
원래 물에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면... 물 낭비하는것을 못참는 성격이라서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닦고 있으면서 물 틀어놓으면 수도꼭지 잠그고 그래요.
이렇듯 환경에 관심이 있어서 수자력공사 UCC 공모전도 참여해보고 여기저기 찾아봐도 물 관련 서포터즈는 없어서 에너지 시민연대에 전화를 했어요. 전화해서 "제가 대학생인데 에너지에 관심이 많아요, 회원이 될 수 있나요?"라고 묻자 회원제는 없고 캠페인 일정에 맞춰서 나와서 같이 일해주시면 되요 라는 답변을 받았어요. 그래서 당일 날 갔는데 중고등학생의 봉사활동 시간 채우기 위한 일이였더라구요. 그렇지만 이왕하는거 열심히 하자라는 생각이 들어 매번 최선을 다했어요. 그 결과 신문에도 사진으로 나오고 2012년엔 에너지시민연대 모범시민상도 받게 되었어요.
경험을 통해 나의 길을 찾다
보통 여행을 가기 전에 그 지역에 대해 검색을 해보잖아요. 제가 검색했을 때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가 30년 후에 사막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막화가 심각하다는 기사를 보게 됐어요. 그런데 막상 몽골을 갔을 때, 사막화에 관한 표지나, 문구, 광고같은 걸 하나도 보지 못했어요.
그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아직 공익광고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듣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어요.' 공익광고가 없는 나라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그 때 처음하게 된거예요. 그 때 세계적인 공익광고에 대한 꿈이 생겼어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와 관련된 걸 알아보게 되었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여러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대기업의 해외지사로 들어가는 것도 있고, NGO기구를 들어가는 방법도 있고 여러가지가 있더라고요. 그러다 엠네스티를 알게되었는데, NGO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하다보니 엠네스티의 한계점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요. 인권단체다보니 거시적관점으로 접근하게 되어, 실제 내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돌볼수 없다는 것이죠. 모든 NGO단체에 한계가 있다는 걸 알고 계속 찾아보던 중 적정기술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적정기술은 예를 들자면 예전에는 생수를 지원해줬다면 LIFE STRAW라는 정수 필터를 지원해주는 거에요. 현지에 있는 사람이 필요로 할 때, 그 사람들이 직접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전해주는 거예요.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게 목적이라 할 수 있어요.
현재 적정기술 아카데미과정을 수료했고, 앞으로는 적정기술, NGO가 잘 되어있는 일본에 가서 세미나, 포럼같은 걸 참여하고 싶어요.
더 많은 것을 보고싶어
앞으로의 계획
일단 6월말에 중국에 가고, 2015년 1월에는 인도에 가고싶어요.
중국의 경우는 저번학기에 일문과 수업을 들으면서 친해진 중국학생이 있는데 그 친구가 초대를 해줘서 가게 됐어요. 간 김에 기숙사 생활할 때 룸메이트였던 친구도 보고 올 것 같아요. 그리고 인도는 느림의 나라라고 하잖아요. 가서 여러 문화를 느끼고 오고 싶어요. 그리고 나중에 되도록 중국-몽골-러시아-네팔-인도 이 여정으로 이동해보고 싶어요. 웬만하면 통일이 돼서 우리나라에서 기차로 쭉 이동하고 싶은데 2015년까지 통일이란.. 너무 큰 꿈이겠죠? 앞으로도 여행은 계속 할 생각이에요. 취업을 해서도, 결혼을 해서도 틈틈이.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김보경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고민 끝에
'공감하고 싶은 사람' 이라고 여겨졌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본인이 나중에 하게된 일과 더불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공감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해주었다.
함께 느끼고 함께 생각하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는 그녀.
인터뷰를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그녀는, 이미 공감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이상 '바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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