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대학교 구성원들간의 소통을 증진시키기 위해 기획된 바람의 초단박 깨알 공감, 발언, 소통 프로젝트, 가천의 소리!
발언자가 직접 발언할 장소를 선정하지만 발언주제는 바로 '여러분 자신' 입니다.
가천의 소리 속 [가천인 이야기].
가천대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의 고민, 어려움, 장애물, 성취, 기쁨, 기대, 그리고 지금의 '나' 를 만든 소중한 것을 나눕니다.
가천대학교 구성원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누구든지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천인 이야기 # 2
하고 싶은 일도, 고민도 많은 반짝반짝 스무살
임진희 (12 신문방송 )
간밤에 내린 시원한 가을비가 여름의 끝을 알렸습니다.
비에 씻긴 하늘이 청명했던 토요일 오전,
현대판 선비들이 모여 입신양명을 꿈꾸는 노량진에서 나고 자란
오늘의 가천인을 만났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임진희.
가천 영 프론티어 3기로 이제 1학기를 마치고 이제 2학기를 맞이한 그녀는
대학생활 첫 학기의 두근거림을 연애가 아닌 대외활동에서 느끼고 여러 경험을 통해
스스럼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하며 고민하는 열혈 스무살 아가씨입니다.
그녀가 입학사정관 전형서류를 접수한 것이 벌써 1년이나 되었고,
교복치마에 체육복을 받쳐입던 수험생은 이제 존재만으로 반짝반짝 빛이나는
스무살 여대생의 라이프를 열심히 즐기고 있었습니다.
미래의 13학번들을 바라는 이들을 위해 마련한 오늘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우리학교를 오겠다 결심하게 된 계기?
경원대가 있긴 있구나 생각은 했는데 경원대를 가야지, 이런 목표가 있는건 아니었어요. 세 군데 학교에 원서를 넣었어요. 신문방송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내신 우수로도 못가고 정시를 뛰어나게 보는 것도 아니니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가야겠다 생각을 해서, 세 군데를 썼는데 가천대학교가 제일 마지막이었어죠. 사실 우리 학교에 대한 인식이 아무래도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학교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이 저하고 잘 맞는 거에요. 그래서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한달 정도 준비 했었죠. 그런데 이미 저 고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붐이 일었어요. '입학사정관제라는 전형이 있고, 곧 할거다.' 이런 얘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닥치는대로 준비를 해놨었거든요. 클럽활동도 방송부로 하고, 학교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하면 그냥 가서 인터뷰 하고. 또 수행평가로 UCC 제작을 할 때 했던 동영상 기획, 제작 같은 활동들이 다행히 학교와 잘 맞아서 서류를 접수해서 1차로 통과 하고, 2차 면접을 보고 그랬죠.
입학 사정관 제도?
*입학사정관제는 대입전형의 선진화를 위한 제도입니다.
입학사정관을 통하여 내신성적과 수능점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었던 잠재능력과 소질,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여 각 대학의 인재상이나 모집단위 특성에 맞는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입니다. (KCUE 대학입학정보 소개 중)
표면적으로는 '내신이나 수능점수보다는 네가 그 분야에 정말 관심이 있는지를 보여줘라, 그에 대한 증거물이 있으면 된다.'그런거였는데요, 제가 겪어봤잖아요, 학교마다 다르긴 한데 내신, 활동내역, 봉사활동, 심지어 수능점수 기준이 있는 학교도 있어요. '수능을 최하 몇점 이상은 맞아라.' 그런 학교도 있고요. 원래 설명하기로는 정말 수시만 준비하고 내신이 부족해도 문제가 없는데, 다른 경쟁자들을 보면 전국대회수상자, 심지어 세계대회 수상경력자도 있어요. 그 친구들은 당연히 내신이 안 좋을 수 밖에 없는 친구들이죠. 다른 성적은 1등급이고 좋은데, 다른 과목의 성적이 안좋아서 평균이 떨어지는게 있잖아요. 그런 평균치를 내세우는 거죠. 할 수 있다고. 아이들이 입시준비한다고 그러면, 본인이 준비하기에 쉽거나, 나에게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준비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얘기해주고 싶죠....
전형은 어떻게 준비했나?
저도 준비를 잘 못한 게, 언론쪽으로 진로를 정했으니까 무조건 신문방송학과로 진학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거예요. 그런데 신문방송학과 사람들은 뭘하지? 생각을 했는데, 솔직히 저희 나이에 인터뷰를 한다거나 취재를 가는 경우는 흔치 않잖아요. 방송부 경력이 있다고 해도, 만날 학교 행사만 찍으러 다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교 입시설명회를 그냥 다녔어요. 선배들한테 배포될 학교 안내책자도 그냥 가져가서 보고......최종적으로 느낀게, 내신은 어쨋든 잡아놔야 한다는 것. 입학사정관 제도가 백퍼센트 확률이 있는게 아니니까요. 저는 대외에서 받은 상이 논술대회 상 하나밖에 없거든요. 영상촬영분야에 관련된 것도 아니니까 '안되겠다. 정시도 준비를 해야겠구나. 나는 여기에 다 목숨을 거는게 아니니까.' 그렇게 2학년 때부터 준비를 했죠. 그렇게 해야 해요. 저랑 같이 준비했던 친구들은 거의 일찍부터 준비했어요.
저희 학교는 입학사정관으로 가고자 하는 학생들을 먼저 불렀어요. 모아놓고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성적데이타를 보면서 아이들을 걸러내죠. 그렇게 추천서에 학교장 직인을 찍어주면 그 추천서에 자기소개서와 증빙자료를 준비해서 서류를 저희가 접수해요. 접수하고 한달 있다가 1차 발표를 했어요. 11월에 수능인데 10월 중순까지 발표를 기다렸죠. 합격여부가 판가름 나고, 일주일 후에 면접보러 오라고 하죠.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면접에 대한 예시문제가 없어요. 면접 시간도 오전오후 복불복으로 받죠. 저는 오전 면접이었는덴 심지어 1번으로 면접을 봤어요. 정말 긴장됐었죠.
면접은 어땠나요?
5대 1 면접이었는데, 면접 전에 10분 동안 두 가지 주제 중에 택일 해서 자기 의견을 생각해두고 구술하면, 자기소개서를 보고 질문을 받는데, 다른 입학사정관 분들은 포멀하거나 시사문제에 대해 물어보시는데, 학과 교수님께서 딱 보시자 마자 "아나운서 되고 싶어요?" 라고 물으셨어요. "예, 그렇습니다" 대답하니까 '왜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당황해서 뭐라뭐라 대답하기는 하는데 교수님은 단 한번의 표정 변화도 없이 서류만 보시더니 제 답변이 끝나자 마자 웃음기 없이 "아나운서 어려운데.." 라고 한마디만 하시는 거에요. 정말 패닉이었죠. 그때 낙방을 직감 했어요. 면접관 중 유일하게 계신 저희 학과 교수님이셨으니 더욱 절망적이었죠. 그런데 정작 입학하고 난 후에 수업에서는 저를 기억 못하시더라고요 (웃음) 당시엔 정말 무서웠어요.
왜 아나운서가 되고 싶나? 면접용 대답말고 정말 하고싶은 이유는?
학창시절에 방송부 생활을 하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나는 그냥 얘기를 하는 건데, 그게 스피커로 나오고. 어디로 가야된다고 그러면 사람들이 그걸 듣고서 그리로 가고, 무슨 활동이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가서 그런 활동을 하는 그런 게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방송 쪽 일을 해보고 싶었고, 또 김주하 자서전을 읽고 완전히 마음을 굳혔거든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그걸 통해서 사람들이 정보를 얻고. 서로 좋은 거 잖아요. 그런게 되게 좋았어요. 김주하 아나운서의 책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건, 자기소개서에도 썼던 글귀인데, " 사람이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 중에 두 가지만 해도 그 사람은 복 받은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그걸 보면서 저는 잘 하는 일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복을 받았다고 생각 하고 , 욕심일지 모르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로 만들고 싶다고 썼죠. '복' 하니까 생각나는 얘기인데, 저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어서, 항상 감사하다는 얘기를 달고 다녀요. 사람 만나는 것도 감사하고, 제가 어딘가 특출나게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하고 싶어요'라고 하면 사람들이 주변에서 도와주시니까. 그게 참 감사하죠.
이외에 받은 어떤 질문?
그 당시 잡스가 사망한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어요. 면접을 보기 전에 받은 문제 중 하나가 '슈퍼스타 K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계속 나오는 지금의 현상이 어떤 현상인지 설명하고 자기의 의견을 찬반으로 논하라'는 질문이었어요. 그걸 생각하고 있었는데, 면접장에서는 먼저 입을 풀으라시며 잡스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거에요. "잡스의 죽음을요?" 그러고 제 생각을 얘기 했죠. 답변이 끝나고 면접관님들은 눈치게임하는 것처럼 가만히 계시더니 '봉사활동을 많이 했군요. 왜 했어요?' 사실 제 봉사활동 경력이 언론쪽과는 관계가 없어 보였던 거죠. 이력 보다는 제 생각을 물어보셨어요. 그리고 자기소개서에는 TED를 본 것을 썼거든요. 그 부분을 보시고 제일 감명깊었던 강연을 물어보시면서 왜 마음에 들었는지,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답하라고 하셨어요. 면접을 보러가기 전에 학교에서는 자기소개서를 썼어도 그에 대한 질문보다는 나중에 어떻게 하고 싶은지 포부나 전공에 대한 질문을 받을 거다 그랬는데, 실제 가보니 정말 자기소개서에 나왔던 내용만 계속 물어보시는 거에요. 검증한다고 해야 하나? 당황스러웠죠. 자기소개서를 보고 가기는 했는데 이미 제출하고 난 후라 제가 쓴 것인데도 기억이 잘 안나는 거에요. 그때 한창 자소서 대필에 대한 얘기도 나고 그랬던 때라 그런 질문들을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고삼이 즐거웠다?
제 고3이요? 친구들이나 저나 다 직설적인데, 친구들이 저에게 붙인 별명이 '독설가'에요. 무섭다고도 하고요. 저는 아끼는 사람일수록 얘기를 더 해줘요. 더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퍼주는 것도 엄청 퍼주고요, '이건 아니다' 싶으면 직설적으로 얘기하고요. 앉아서 공부하다가도 서로 풀이방법이 다르면 친구들끼리 그걸로 싸운 적도 있고요. 특히 입시철의 여자애들은 더 민감하고 말 한마디에도 예민한데, 저는 그 얘기를 다 했거든요. 저도 한창 슬럼프 왔던 시기에는 전문대를 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친구들은 저보고 '넌 그렇게 해서 전문대는 가겠냐?' 그런 얘기도 들었고요. 외모는 신경 안쓰고 교복 치마에 체육복 바지 입고다니고 학생부 선생님들이 뭐라 하시면 '왜요....고3이잖아요'...........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제일 편했던 거 같아요. 사람들도 얘기하는게, 고삼시절에 제일 힘들다고 얘기하는데 돌이켜보면 그 시절에 공부만 하면 되니까 그게 제일 편했던 거 같기도 해요. 그리고 제일 많이 놀았어요. 사실 그 때 몰래몰래 노는 것도 정말 재밌고 . 다시 돌아가라면 노는 건 하겠는데 공부는 못하겠어요.(웃음) 저는 그 당시 수시, 정시, 입학사정관까지 다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 끔찍했어요. 다른 아이들이 포기하는 수학, 중국어, 예체능까지 다 해야 하는 상황이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요. 수시 접수를 할 때도 선생님께서 안정권이나 하향지원을 해주셨어요. 상향지원하면 안되냐니까 정색하시고 '응, 안되'이러시는 거에요. 선생님도 직설적이신데 그 3학년 선생님들이 다 직설적이셨어요. 희망을 주시는 분이 한분도 안계시고. 지금 생각하면 야속하기보다는 감사해요. 그 땐 선생님을 좀 미워했거든요. 아이들이 그런게 있어요. '지금 내가 안된다고? 그럼 내가 보여줄게." 선생님들이 '안된다 안된다' 그러시니까 오히려 아이들이 오기를 발동한거죠. 그래서 오히려 잘 된 친구도 있고요. 지금은 정말 감사해요.
사실, 어제 얘기하다가 엄청 울었던 일이 있어요. 아는 분이 있는데, 제가 학교 안팎에서 이것저것 일하고 다니니까 안쓰럽다는 얘기가 나온거에요. '네 목표가 확고한데 너무 많은 일을 하고 다니는 것 같지 않니?'그러시는 거에요. '차라리 목표가 흔들리면 여러가지 경험해보면서 선택할 수 있지만 아나운서가 하고 싶다면 포멀하게 학점을 채우거나 토익을 공부하거나 회화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제 의견을 말씀드렸죠. "물론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 있을 때 이것저것 경험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나요? 나중에 고학년 되면 정말 공부 밖에 못한다는데 지금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했더니 그것은 저학년 때 안했기 때문에 힘든 거지 저학년 때 해놓으면 고학년 때는 안힘들다고 하는 거에요. 그 분이 철이 없거나 그냥 말만 번지르르하다면 모르겠는데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니까 속이 상하는 거에요. 좀 그래도 토닥토닥 위로해주시면 좋을텐데 막 쏘아붙이는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지내야 될까? 내가 이것저것 경험을 쌓는게 맞을까, 아니면 한 길만 파는 게 맞을까, 고민하는 중이에요.
고민이 많은 애늙은이
자주 일을 같이 하는 오빠와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 오빠가 그러는 거에요. "네 나이에 지금 놀러다니고 연애하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니? 그런데 너는 매일같이 공부 얘기하고 영상얘기 하고, 너 뭐냐?".....제가 지금 하는 일이 4가지에요. 저는 나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건데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게 안쓰러웠나봐요. 그리고 저한테 그런 소리를 많이 해요. 애늙은이 같다고. 생각하는 거나 행동하는 거나 다 애늙은이 같대요. 하도 들으니까 어쩔 수 없이 수긍은 하는데 좋지는 않죠. 좋은 말도 있잖아요? 생각이 깊다, 생각이 많다, 그런데 애늙은이라니......저도 그래서 동갑내기 친구들 보다는 어른들과 얘기하는 게 더 편해요. 어른들이랑 얘기를 해보면 고민이 있을 때 경험에 기초해서 해답을 얘기해주니까. 또 궁금증도 들어주고 또 이런저런 경험담도 들어보고요. 동갑들이랑 고민을 얘기하면 저는 해답을 듣고 싶어서 만나는 건데 결국 같이 고민을 해버리니까 해결이 잘 안되는 거 같기도 하고요(웃음)

내가 20대에 이루고 싶은 것.
저는 라디오를 하고 싶어요. 뉴스도 뉴스인데 라디오는 꼭 해보고 싶어요. 여러 분야가 있고 아홉시 뉴스를 꼭 하고야 말겠다는 사람도 있잖아요, 근데 저는 그런건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언론왜곡 없이 똑같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진짜 참된 정보를 전달해주고 싶고, 실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해서 라디오는 꼭 하고 싶어요.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를 할 때 편하게 다 얘기는 하지만 뭔가 가려져 있을 때 더 많이 얘기를 하고 자신을 더 드러내잖아요. 제 습관이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얘기를 하는데 그걸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이 있고 위축되는 사람도 봤고요, 피하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전화를 한다거나 그러면 대부분 얘기를 더 잘 꺼내거든요. 저도 그 사람의 표정이 안보이니까 더 확실하게 얘기를 해줄 수 있고요. 저도 사람인지라 상대방의 표정을 보면 흔들릴 때가 있거든요. 독한말을 해주고 싶다가도 표정이 안좋으면 접어서 넣어두고 나중에 얘기하자는 경우도 있어서 표정에 구애받지 않는 라디오가 더 하고 싶어요.
어쨋든 방송사에 들어가는 거죠. 어렸을때 부터 준비했었고, 신방과에 와서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방송사에 들어가는게 최종 목표고요, 또 제 이름에 부끄럽이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름만 들어도 "아, 그 친구". 사람들이 제게 물어보는 경우가 있어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러면 '너 진희 아니?' 라고 물어봤을 때 '"아 걔 괜찮지, 자기 일 열심히 하고 제대로 하는 친구지." 하고 기억되는 그런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보여지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제가 흔들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하면서 남들에게 인정도 받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진 / 표정민
글 / 불어랏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