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컨텐츠/씩군의 시사노트

[씩군의 시사노트 11회] 22명의 죽음, 그 이상의 슬픔 ─ 쌍용차 사태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6. 7. 09:00

이 게시물은 개인의 의견이며 가천대학교와 무관합니다. 바람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씩군의 시사노트 정주헌입니다.

이번 11회에서는 쌍용차 사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미 알고 계신분들도 있겠지만,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해결되고 있지 않은 이 문제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의 인식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여러분들의 작은 관심이 사태 해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연합뉴스)

 

1. 들어가며

(오마이뉴스. <박원순 시장과 샌델 교수, 왜 쌍용차 분향소에?>.2012.6.3. △좌=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우=김정우 쌍용차 지부장)

얼마전 <정의는 무엇인가>의 저자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가

박원순 시장과 함께 서울 중구 정동 대한문 앞에 차려진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에 방문했습니다.

신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한국어판 출판에 맞춰 방한했던

마이클 샌델 교수는 박원순 시장과 조찬을 가진 후 예정 없이 방문했습니다.

샌델 교수는 이 자리에서 분향소가 차려진 이유와 해고자 현황을 듣고

쌍용차 사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2. 사건의 발단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쌍용그룹은 본래 70~80년대에 10대 재벌에 속할 정도의 대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경제위기로 쌍용그룹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죠.

그러면서 쌍용그룹의 핵심 계열사 중 하나였던 쌍용자동차1997년 IMF 이후 분리.

그룹 정상화를 위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1998년 1월 9일 대우그룹에 팔렸습니다.

하지만 대우그룹도 1999년에 들어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우자동차 아래에 소속되어 있던 쌍용차 역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됩니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기업과 금융기관이 서로 협의해서 진행하는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과 결과를 뜻하는 것으로

 기업 스스로 하기 힘든 기업 내부의 구조조정작업을 채권금융기관 주도로 진행하게 된다.

사정에 따라 구제불능의 부실기업으로 전락할 수도 있고

 정상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기로에 서 있는 기업을 확실하게 `회생'시키는 것이 워크아웃의 취지다.

그룹 내의 퇴출기업 결정과 상호지급보증 해소,

부실규모에 따른 감자(減資)와 부채감면 등 기업소유주 및 금융기관간 손실부담비율 결정,

부채 구조조정, 대출금 출자전환, 자산매각, 주력기업 선정 및 영업전략 수립, 대내외 투자자의 신규 투자자금 유입방안 등이 모두 포함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사전)

 그 해 12월에 쌍용차와 채권단 사이에 워크아웃 양해각서가 체결되고,

 2000년 4월 15일을 기해 대우자동차로부터 완전히 분리됩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3년 11월 1일,

 채권단은 쌍용차를 매각하기 위한 공개 경쟁입찰을 공고합니다.

 이에 인수제안서 제출 마감일인 12월 11일까지 최종적으로 제너럴 모터스, 상하이차, 란싱그룹 등이 제안서를 제출했습니다.

 몇 차례의 심사 끝에 12월 16일 우선협상대상자에 란싱그룹이 선정되었으나,

최종입찰제안서에 관한 채권단과 란싱그룹 간 이견으로 쌍용차의 매각이 무산됩니다.

 2004년 3월에 채권단은 후순위업체였던 상하이차2004년 7월 23일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게 됩니다.

 나흘 후인 7월 27일에 채권단과 상하이차 간 쌍용차 매각협상 양해각서가 체결됩니다.

2005년 1월 28일 최종적으로 상하이차

5900여 억원에 쌍용차의 지분 48.9%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채권단과 상하이차 간 쌍용차 매각 본계약이 체결되었습니다.

 

 

3. 문제의 발생

이후 지속되는 판매부진과 경기 악화로 쌍용자동차의 유동성이 악화됩니다.

노조와 경영진은 주택융자금·학비보조금 등 일체의 복지혜택을 사측에 반납하게되죠.

한편 2008년 12월 17일부터 약 2주간 공장가동을 중단하기로 합의합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유동성 공급을 약속하던 상하이차

12월 23일, 돌연 노조 측의 구조조정 거부를 명분으로 철수를 시사하면서 상황이 급작스럽게 악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쌍용차 경영진은 2대 주주인 산업은행과 정부에 유동성 공급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산업은행과 정부는 "대주주인 상하이차의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며 이를 거절했습니다.

결국 1월 9일, 상하이차서울중앙지방법원쌍용자동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하여 쌍용차의 경영권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당시 상하이차가 경영권을 인수한 4년간 단 한 푼의 투자도 하지 않았으며,

 애초 매각 협상시 합의한 기술이전료 1200억원 중 절반인 600억원만 지불한 채

쌍용자동차하이브리드 엔진 기술 및 핵심연구원들을 중국 현지 본사로 빼돌렸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먹튀' 논란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후 위기에 처한 회사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2009년 4월 8일, 쌍용차 법정관리인과 사측은 직원 2646명의 대량 해고 계획을 발표합니다.

사측은 희망퇴직과 정리해고 등의 형태로 이를 시행합니다.

(한겨레) 

 

억울하게 해고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은 2009년 5월 22일, 평택 공장에서 농성에 들어갑니다.

이에 맞서 사측은 공장을 폐쇄하고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는 동시에

용역을 고용하여 맞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측이 음식물 반입 및 의료진 출입을 막은 것,

경찰에서 스티로폼도 녹이는 최루액 및

테러 집압에 쓰이는 테이저건을 사용한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국가인권위에서는 이러한 진압이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다며 자제할 것을 권고하지만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전경이나 의경이셨던 분들의 글들도 봤습니다. 원인의 문제를 떠나서 강경 진압 논란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군요.)

 (한겨레)

이후 진압으로 무력화된 노조는

2646명 중 52%는 정리해고, 48%는 무급휴직이라는 내용으로 사측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그와 동시에 노조 지도부를 비롯한 수십 명이 사법처리됨으로써

쌍용차 사태는 일단락됩니다.

 

 

4. 끝나지 않은 문제

옥쇄 파업 후 노사간 합의한 내용은

'공장에서 2교대 생산물량을 확보하는 즉시,

무급휴직자를 시작으로 영업점 전직자, 희망퇴직자 순으로 복직을 실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중 457명은 1년 후인 2010년에 일단 복직을 시키는 것으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3년이 흐른 지금,

단 한명도 복직하지 못했습니다.

2009년 당시에 연 3만5000대의 생산량을 보이던 쌍용차가

지난해엔 11만3000대를 생산하는 정도로 회복되어,

전문가들은 쌍용차가 어느 정도 경영정상화를 이뤘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는 아직 2교대 근무를 할 만큼의 생산량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복직시킬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쌍용차 파업 노조원의 이미지 때문에 사실상 이직도 어려운 상태입니다.

(한겨레)

자살과 스트레스성 질환 등으로 인한 사망.

그리고 다수의 해고자와 가족이 겪는 우울증...

 

3년이 흐른 지금까지 총 22명에게 죽음이라는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으며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나 회사의 노력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겨레)

4월 24일에는 중구청 공무원과 용역직원 20여명이 몰려들었습니다. 남대문경찰서 경비병력 3개 중대를 대동했습니다.

분향소를 강제철거한 것입니다.

(한겨레)

22명의 영정사진은 쓰레기차에 버려졌습니다.

남대문경찰서는

“분향소 쪽이 경찰에 (고 이윤형씨)49재 때(12일)까지 치우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

경찰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왔던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6. 마치며

쌍용차 문제는 우리와 상관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빠른 시일내에

이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며

더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이상으로 시사노트 11회,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 게시물은 개인의 의견이며 가천대학교와 무관합니다. 바람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참고: 한겨레신문, 오마이뉴스, 위키백과, <한.기.연.> 네이버카페, <구름이 떠다니는 블로그> 다음블로그 등